고구려 전성기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영토, 백제 요동 정벌 과정과 내용

안녕하세요’-‘)b
오늘은 고구려의 전성기 하면 누가 먼저 떠오르나요?
저는 광개토대왕입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서부터 드라마에서 접하기가 쉬워서 고구려 하면 광개토대왕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은 광개토대왕 연호부터 백제정벌, 요동정벌 등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광개토대왕, 그는 누구인가? “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19대 왕으로 소수림왕이 쌓은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영토확장에 신경을 쓰고 백제정벌의 요동정벌을 이뤄낸 군주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 요동벌판을 바라보던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의 이름은 담덕으로 유년기 시절의 광개토대왕이었습니다.

” 광개토대왕의 일생과 업적.
담덕은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할아버지 고국 원왕을 떠올렸습니다.
고국원왕은 연나라와 싸우던 중 백제의 기습공격을 당해
평양성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광개통대왕의 머릿속에는 반드시 백제를 정복하고 할아버지의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국의 양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담덕은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 광개토대왕 백제정벌”
광개토대왕은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백제를 정벌한다는 생각으로 392~396년 백제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2차 정벌 때 백제 땅의 일부를 점령하고 백제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백제 정벌도 광개토대왕 업적이었지만 고구려의 진짜 적은 중국의 후연이었습니다.

당시 왜구가 신라를 침공하면서 신라는 급히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광개토대왕은 5만의 군사를 보내 왜구를 몰아내게 되었습니다.
후연은 고구려 병력이 빠진 틈을 타 공격했고 고구려는 후연으로부터 많은 땅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격분하여 왜구를 몰아냄과 동시에 군사들을 모아 후연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 광개토대왕의 요동정벌”
402년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이끌고 요동지역으로 향했습니다.
” 고조선 영토에 있는 후연을 쫓아내고 고조선의 영광을 되찾자!”
엄청난 고구려의 대군을 보자마자 공포를 느낀 후연의 군사들은 성 안으로 도망쳐 숨었고, 후연의와 모용귀는 숙군성을 버리고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고구려군은 이러한 기세를 바탕으로 현도성과 요동성까지 점령하였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요동성까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용휘는 격분했습니다.
엄청난 수의 군대를 이끌고 온 모용휘는 고구려 군사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은 간첩을 통해 미리 후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정면으로 싸우기보다는 후연의 군사를 도모하는 전술을 사용하였습니다.
험준한 산에 미리 군사를 숨기고 후연의 병사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고구려군은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고구려는 적은 병력과 손실로 막대한 수의 후연군을 몰아내고,
넓은 요동 땅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여와 동부여를 무너뜨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를 만든 장본인이 광개토대왕이었습니다.#광개토대왕영토 #광개토대왕영토
그러나 412년 3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광개토대왕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요동 땅에 높이 6.2m, 폭 2m의 광활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세워져 있고,
비석에 새겨져 있는 내용을 보면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나라를 평안하게 만든 광개토대왕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고구려는 왜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신라에 멸망했을까요?
이 내용은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에 무적함대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광개토대왕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고구려 전성기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영토, 백제 요동 정벌 과정과 내용